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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한(恨)과 살맛

기사입력 2021.08.23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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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만큼 고생한 사람도 드물거다. 모르는 소리 마 -

     "나만큼 고생한 사람도 드물거다"고, 백이면 백사람 모두들 그렇게 느끼고 사는 것이 인생이다.

     
    남이 보기엔 별다른 풍파도 없었던 파자같지만 "모르는 소리 마"하고 지나온 고생의 눈물자국을 자기혼자 되씹는 것이 누구나의 가슴에 품은 고되고 외로운 인생의 역정인 것이다.


     만약 "나는 행복합니다"고 남 앞에서 서슴없이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마침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 순간적인 삶의 보람을 표현했을 뿐이지 진실로 행복한 인생이라고 만족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종교적으로는 원죄로 규정짓지만 이렇게 남이 모르는 제나름의 괴로움, 거칠은 운명을 극복해 가면서 모두들 악착같이 살아간다.


     부모의 환갑잔치때 "우리 어버이만큼 우리를 키우기 위해 고생하신 분은 이 세상에 둘도 없을 것입니다. ---"라고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대개의 자녀들은 손님들에게 인사한다. 각별한 효자, 효녀라서가 아니라, 또 실지로 그럴만한 모진 과거가 아니더라도 자라나면서 눈여겨본 자녀들의 눈에는 어버이의 한과 악전고투의 긴 인생이 마디마디 이 순간의 가슴에 와닿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예외없이 그 어버이는 "우리만큼 고생한 사람 - - -"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하고 스스로 울컥하고 용케 헤엄쳐 넘어온 인생의 파도를 새삼스럽게 回憶(회억-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하여 감회에 가슴 뭉클해하는 것이 인간이 가진 자학의 속성인 것이다.


     여기서 나의 뇌리엔 문득 1950년대 중엽(中葉) 가난과 혼란 속에 흐느적거리던 그 시절의 한 토막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곳은 대구중앙로 어느 다방 한 구석.

     "반되 쌀 사먹고 살아본 경험없지?" .... 묻는 사라은 룸펜시대의 나.

     "허허, 최선생 봉투쌀 사 먹어본 일 없죠?" 되받아 묻는 이는 지방군수와 도청 과장 지내고, 국회의원 출마했다가 낙선한 바람에 날개쪽지 떨어진 궁핍한 시절의 C씨.


     언뜻 들으면 무슨 소린지 알아듣기 힘든 대화지만, 실은 서로 인생 밑바닥의 가난을 자조하는 일석이다.


     그 무렵 쌀 한 되 값은 3백환, 한 되 살 돈을 마련 못해 150환의 반 되씩 그날 그날 마련해 산다는 신세타령에 한 수 더떠서 150환조차 구하기 어려워 봉투에 넣은 쌀을 남문시장 구멍가게 잡화상들이 백환씩 받고 팔고 있어 그걸로 연명하고 있다는 역습인 셈이다.


     "눈물과 함께 빵을 먹어본 사람이 아니면 인새의 맛은 모른다"고 한 "괴테"작품 중의 한 구절이 실로 실감나던 시절이었다.


     그 C씨란 20여년의 파란 끝에 지금 국회의장으로 화려한 각관을 받고 있는 채문식씨 바로 그 사람이다. 이런 이야기가 그에게 결코 불명예스런운 것은 아니라고 나는 믿기 때문에 감히 지난 날의 비화를 털어놓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현존하는 고위정치인의 옛일을 소개한다는 것이 나의 성격상 조금 쑥스럽기는 하지만 소외된 음지에서 인생을 체념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음지가 있으면 반드시 양지가 있고 양지의 그늘엔 늘 음지가 도사리고 있다는 인생의 묘미를 되씹어 본 것이다.


     

     근래엔 채의장과 거의 만나본 적이 없지만 화려한 재계의 요직에 오른 그의 지상사진을 대할 때마다 봉투쌀 사들고 힘없이 집으로 뚜벅뚜벅 돌아가던 시절의 그가 머리에 떠올라 내혼자 싱긋이 웃곤 한다.


     “나만큼 고생한 사람!”에서 “우리만큼 고생한 세대!”로 이어지는 자조나 자학의 뭇가슴에, 실은 그 누구나 기나긴 인생여전에 남만큼 고생도 하고 남만큼 고애도 맛보아야 진실한 살맛을 찾을 수가 있다는 한 삽화로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


     나만 고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알고 보면 모두가 다 제각기 고생하면서 살아나가는 것이 어느 기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인간이 짊어진 숙명이기도 한 것이다.

    (1983. 4. 20. 몽향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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