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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市)로 승격(昇格)했을 때 - 몽향칼럼 중에서

기사입력 2021.08.06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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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5. 8.21 저 -

    읍(邑)이 시(市)로 승격하면 우선 축하 분위기로 들뜬다. 면이 읍이 돼도, 그곳 주민들은 어깨가 으쓱해진다. 내년부터는 점촌, 상주가 시로 되어 전국에 1 특별시, 3 직할시, 57시가 갖추어지게 된다. 여기에 선거 때의 공약대로 내년쯤 광주시가 직할시가 되면 우리나라 인구의 반 훨씬 넘게 도시주민이 되는 셈이다.

     

    읍이 시가 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우선 읍사무소가 시청이 된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상급관청이던 군수와 작별하고 새로 시장이 한 사람 부임한다. 시장은 3급 공무원이라니까 4급인 군수보다 서열이 윗자리다. 

     

    부시장도 있어야 하고 사무관급인 6~7개의 과장 자리도 탄생한다. 읍사무소는 흡수되고 말지만, 군청은 장차야 어디로 가게 되든 당장은 자기 관할 아닌 땅(새 시(市))에서 좀 어깨를 좁혀 살아야 한다. 경북도청이 대구직할시에 버티고 있는 것과 같은 형편이다.

     

    어쨌거나 공무원사회로 보아서는 “승격 만세”를 부르고 싶을 만큼 벼슬자리가 늘어나 다다익선이다.

     

    그러면 그곳 주민들은 어떤 변화를 맛보게 될까? “군민”이던 신분이 “시민”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대신 세금은 다소 많아진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도시계획세”라는 것이 붙고 “시 승격”에 따른 독립 재원이 필요하니까 명목이야 무엇이든 “군민” 때와 다르다. 

     

    시가 밥 먹여 주는 건 아니니까 앞으로 수돗물이나 하수도 사정이 좋아지거나 길 포장이 나아진다고 하더라도 그 비용은 “시민”이 감당할 책임이 있다.

     

    그 밖에 무엇이 달라질까? 지방자치제도라면 시민들 스스로가 뽑아 만든 시의회를 통해 오순도순 발전책을 궁리해 나갈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림의 떡이다. 장차 크게 발전하겠지,,,, 하는 기대의 허상만이 떠오른다.

     

    곰곰 생각해 보면 예나 지금이나 관료들의 생리란 제 몫 차지하는 데는 참으로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감(종6품)을 부사(종3품) 자리로 껑충 승격시킨 인동(仁同) 같은 예를 보면 거둬들이는 세공과 잡세에 못 이겨 선산으로 이사간 백성들이 숱했다는 전설도 있다.

     

    나랏님이야 그런 것 알 까닭이 없지만 벼슬자리가 높아지면 아전들 세도 역시 드세어져서 그만큼 토색질이 심해진 모양이다.

     

    불과 4년 전의 일이다. 정부가 행정기구 폐합을 단행한 적이 있다. 도지사 밑에 둘 있는 부지사를 하나 줄이고, 교육감 밑에 부교육감, 군수 밑에 부군수, 구청장 밑에 부구청장,,, 있던 “부”자를 없앴다.

     

    중앙부서의 군살도 빼겠다고 했다.

     

    행정기구만 자꾸 비대해지고 실상실(室上室)의 불필요한 벼슬 때문에 오히려 행정사무가 지체된다는 판단에서였다.

    “*고려공사삼일”보다야 낫지만 선거가 끝나자 어느새 슬금슬금 다시 “부”자가 늘어나 부구청장은 당당히 배치되고 말았다.

    * 고려의 정책이나 법령은 사흘 만에 바뀐다.

     

    일반 시장을 4급에서 3급으로 올리려다가 국회서 말썽이 되어 일단 주저하는 듯하더니 눈치껏 어느새 말끔히 3급이 되어 있다. 2중3중으로 연수원도 생겨났다.

     

    파킨즌법칙이라 하여 관료들의 자기 비대를 위한 욕망은 끝이 없다.

    5.16 직후 23만이던 공무원총수가 과다하다 하여 18만 명으로 감원했던 것이 기억이 생생한데 지금은 벌써 70만에 육박하니 놀랍다. 인구 증가율쯤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복잡해지니 행정사무도 그에 따라 늘겠지만, 문제는 그 행정이 왜 그다지도 점점 까다롭게만 돼 각 국민 생활을 일부러 귀찮게 만들 듯이 “행정을 위한 행정”이 번창해지느냐 하는 의문이다.

     

    모처럼 시로 승격하여 좋아하는 새 시민들에게 심술을 부리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면 매우 죄송하지만, 자치라는 알맹이는 빼먹은 채 외형적 행정 확대가 국민들에게 기실 무슨 실익이 있을까 하는 성찰만은 필요할 것 같다.

     

     

     

     

    [1985. 8.21. 몽향칼럼 중에서, 1985년도의 자료이기 때문에 맞춤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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